'토스' 대표가 말하는 성공하는 창업자가 되는 법
'토스' 대표가 말하는 성공하는 창업자가 되는 법
  • 정재기
  • 승인 2018.12.17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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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리퍼블리카는 간편송금 서비스 '토스'를 서비스하는 스타트업이다. 2015년 2월 서비스를 시작한 토스는 2018년 기준 누적 다운로드 2100만 건, 누적 송금액 27조 원을 기록했다. 간편송금으로 시작한 토스는 계좌 통합 조회, 신용등급 조회, 부동산 및 펀드 소액 투자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종합 금융 서비스로 성장하고 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토스 서비스 후 세콰이어 차이나, 페이팔 등 글로벌 투자사에서 총 13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토스 로고
토스 로고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치과 전공의 출신이다. 국내 유수 종합병원에서 전공의 생활을 하다 국내 첫 장애인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3년간의 공중보건의 생활 끝에 창업에 나섰다. '창업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 발전에 기여한다'라는 신념 아래 여러 서비스를 시도했고 2015년 2월 토스를 출시하며 비바리퍼블리카를 국내 최고의 스타트업으로 성장시켰다.

 

결정적 순간 "포기는 없다...바닥에서 다시 도전을 함께 한 순간"

 

"토스를 시작하기 전, 쉽게 말하면 회사가 망했어요. 돈이 없어서 더는 버틸 수가 없었죠. 당시 통장에 남은 돈이 2만 원이었어요. 더는 팀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회사를 접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어요. 결과적으로 회사를 계속 유지하기로 하고 팀원들에게 제 결심을 말했어요. '당분간 월급은 못 주지만 계속 함께 하고 싶다'라고. 다행히 팀원들 모두 당장 월급 없이 계속 같이 일을 하기로 했고 새로운 아이템으로 도전을 이어갔어요. 이 시간을 거쳐 간편송금 시장이란 기회를 발견했고 지금의 토스가 탄생했어요. - by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Q.토스 서비스 전, 그러니까 회사가 망했다고 표현한 당시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2011년 창업을 하고 초음파를 이용한 SNS '울라블라', 카카오톡 기반의 투표 서비스 '다보트(vote)'등을 개발했어요. 토스 이전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서비스는 다보트였는데 사용자들의 큰 관심을 얻지 못했어요. 설상가상으로 대기업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내면서 다보트를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과정에서 자연히 회사도 어려움에 처했어요. 당시 제가 개인 대출로 팀원 월급을 주면서 회사를 끌고 가고 있었는데 빚이 2억 원 정도였어요. 다보트가 망할 때 즈음엔 대출받은 돈도 다 떨어져 더 이상 팀원 월급도 줄 수도 없었어요. 회사를 닫아야 할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Q.당시 대표님께는 어떤 선택지가 있었나요. 

"한 가지는 회사를 닫고 저는 저대로, 팀원들은 팀원대로 각자의 길을 가는 거였어요. 다른 하나는 회사 상황을 솔직히 얘기하고 계속 함께 가는 걸 제안하는 것이었죠. 한 마디로 '당분간 월급은 못 줘. 그래도 우리 한 번만 더 같이 해보자' 이렇게 얘기하는 거였어요. 많은 고민 끝에 두 번째 방안을 택했어요. 팀원들에게 솔직히 얘기했고 고맙게도 팀원 모두 월급 없이 함께 다시 도전하는 걸 받아줬어요. 그렇게 바닥에서 다시 한번 시작할 수 있었어요."

 

창업 초기 이승건 대표
창업 초기 이승건 대표

 

Q.이미 여러 번 실패했고 월급도 제대로 안 나오는 상황에서 팀원들이 계속 함께 도전을 이어간 이유는 뭘까요. 

"우리 팀이 결국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당시 팀원이 저까지 4명이었는데 각자 캐릭터가 다르고 가진 장점도 다 달랐어요. 저는 학습 능력이 빨랐고 다른 1명은 근성이 강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팀에 에너지를 줬어요. 또 다른 분은 제품에 대한 감이 좋고 아닌 걸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죠. 나머지 한 명은 개발을 정말 잘했어요. 서로의 성격이나 능력은 달랐지만 이 다름이 합쳐서 시너지를 낸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어요. 또 제품에 대한 관점이 늘 일치해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힘이 있었어요.

사실 4명이 인간적으로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절대 친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죠.(웃음) 그래도 함께 있으면 분명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서비스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회사를 떠나지 않았던 거 같아요."

 

Q.만약 팀원들이 대표님 제안을 거절하고 모두 떠났다면 대표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나요. 

"저는 혼자서라도 창업을 계속할 생각이었어요. 정말 마지막 방법으로 생각한 게 일단 여수나 당진 같은 지역으로 내려가 다시 전공의 생활을 하는 거였어요. 지방에서 일을 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환자를 봐야 해서 몸은 상하겠지만 그래도 2억 원이나 되는 빚을 갚으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당시 계산으로 한 달 급여가 천만 원을 웃도는 수준이었어요. 한 1년 6개월 정도 일해서 빚을 다 갚고 6개월을 더 일해서 1억 원 가량을 모아 다시 팀을 꾸릴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지방 치과 전문의 일자리를 알아봤어요."

 

Q.팀원들과 계속 일을 하기로 한 뒤 어떤 기간을 보냈나요. 바로 토스란 아이디어가 나온 건가요. 

"일단 회사 운영비는 벌여야 해서 외주 개발을 1년 정도 했었어요. 정말 닥치는 대로 외주 개발을 했어요. 외주로 버티면서 틈나는 대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았어요.

'고스트 프로토콜'이라고 당시 유행하던 영화 제목이기도 한데 팀원들이 일정 기간 흩어서 각자 아이템을 발굴하고 모여서 이를 체크하는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모았어요.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나 가로수길 카페에 앉아 사람들이 어떤 얘기를 하는지 어떤 불편함을 느끼는지 관찰했어요. 이렇게 2~3일 동안 아이템을 모으고 팀원들과 모여 아이템을 논의하고 이렇다 할 아이디어가 없으면 다시 흩어져 아이템을 찾고. 이런 방식으로 몇 달 동안 100여개 아이디어를 모았고 그중에 하나가 토스였죠. 이 중에 토스보다 앞서 서비스를 내고 반응이 좋지 않아 폐기한 아이디어도 여럿 있었어요."

 

Q.토스 전에 테스트해본 아이디어는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몇 개만 말씀드리면 일단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문화센터, 구청, 동사무소 등에서 열리는 문화강좌를 한곳에 모아볼 수 있는 서비스가 있었어요. 셀카봉이 유행하기 전에 혼자 멀리서도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요. 또 기사나 블로그 글을 더 쉽게 공유하는 서비스도 개발해 테스트해봤어요.

테스트는 보통 1~2주 정도 진행했어요. 그 기간 안에 반응이 없는 서비스는 바로 접고 다음 아이디어를 테스트하는 방식이었어요. 저희 팀이 제품에 대한 감이 좋고 유효한 사용자 반응 정도를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어요. 그래서 2주 내외의 기간이면 이 서비스를 계속할지 중단할지 판단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어요. "

 

Q.토스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요. 

"은행 송금 서비스가 너무 불편하다는 건 모두가 느끼는 문제였어요. 다만 아무도 그 해결책을 못 찾았던 거죠. 송금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을 몇 달간 고민했어요. 머릿속에 그 생각만 가득했죠. 어느 날 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스티커를 붙여 달라는 기부단체를 봤어요. 이 단체가 CMS 자동이체 방식으로 정기 후원인을 모으고 있었는데 그걸 본 순간 '이거다'했죠. CMS 자동이체로 송금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해답을 찾은 거예요."

 

Q.CMS 자동이체가 어떻게 간편송금의 해법이 되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세요. 

"쉽게 말하면 CMS 자동이체는 비금융기관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돈을 빼갈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통신료나 아파트 관리비를 자동이체 걸어두면 통신사와 관리사무소에서 특정일에 해당 금액만큼의 돈을 빼가잖아요. 이 방식을 응용하면 금융기관 없이 송금이 가능해요.

당시 관련 법에 저촉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회 편익 증대를 위해 규제 문제도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Q.토스도 똑같이 서비스를 내고 테스트하는 시간을 가졌을 텐데 지표가 어땠나요.  

"토스를 처음 대중에 공개한 게 2014년 2월이에요. 서비스 론칭 페이지를 만들고 별다른 홍보도 안 했는데 며칠 만에 몇 만 명이 페이지를 방문했어요. 자세히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재사용률과 테스트 기간 성장률이 이전에 다른 서비스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았어요. 이때 드디어 가능성 있는 서비스를 찾았다고 판단했고 토스로 아이템을 확정했어요."

토스 정식 서비스 최초 화면
토스 정식 서비스 최초 화면

 


Q.서비스 개시 후 상황은 어땠나요. 테스트 기간 보여준 성장률을 그대로 이어갔나요.  

"2014년 2월에 론칭을 한 후 2달 동안은 정말 빠르게 성장했어요. 쉽게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성장을 했죠. 하지만 2달뿐이었어요. 2014년 4월 토스를 서비스하는 것을 금융당국이 불법으로 결정했고 저희는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어요. 토스가 셧다운 된 날은 마침 한 창업 지원 기관에 토스를 소개하러 가는 날이었어요. 발표를 하러 이동하는 길에서 서비스가 셧다운 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때의 당혹스러움이란... 하지만 약속된 일정이라 취소할 수 없어 그대로 진행했어요. 당장 규제에 묶였다고 토스를 포기할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솔직히 이런 상황에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에요. 계속 실패하다 이제 막 힘들게 굉장한 아이템을 찾았는데, 저주에 걸린 것도 아니고 왜 또 성공은 저 멀리 달아나는지... 당시 서비스를 론칭하고 엄청난 지표가 나오자 토스 성장성을 보고 팀에 새로 합류한 팀원도 있었어요. 이 분은 팀에 온 지 1달 만에 서비스가 중단된 거예요. 원래는 유명 벤처캐피털(VC) 심사역으로 가는 게 확정된 상황에서 어렵게 토스에 합류했는데 1달 만에 서비스가 셧다운 된 거죠. 팀도 저도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Q.이번에도 팀의 동요는 없었나요. 서비스 중단이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힘든 상황이었지만 다들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규제는 언제가 풀릴 거고 서비스가 재개되면 다시 엄청난 성장을 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입사 후 1달 만에 서비스 중단이란 상황을 맞은 팀원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토스라는 아이템을 찾은 순간부터 저희 팀에 두려울 건 하나도 없었어요. 부족한 돈도 구할 수 있고 규제도 다 풀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믿음대로 서비스가 중지된 상황에서도 투자 유치에 성공했어요. 셧다운 2달 후인 2014년 6월 알토스벤처스에서 100만 달러(약 11억 3000만 원)를 투자해줬어요. 투자를 받기 직전 통장에 200만 원 밖에 안 남은 상황이었죠. 알토스벤처스는 이전에 페이팔 투자를 고민한 적이 있어 결제 산업에 대한 이해가 깊었어요. 저희가 2달 동안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만든 지표를 보고 페이팔 같은 가능성을 본 거죠. 이 투자 유치로 당장 재정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규제를 풀기 위해 언론과 정부에 간편송금이 사회 편익과 산업 발전에 필요하다는 걸 꾸준히 알렸어요. 그러다 저희 입장에서는 굉장히 행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른바 '천송이 코트' 사건이예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면서 주인공 천송이가 입은 코트, 가방 등을 사기 위해 대규모 중국 소비자가 국내 쇼핑몰에 유입됐어요. 하지만 복잡한 결제 시스템 때문에 구입이 쉽지 않았고 이 문제를 당시 대통령이 언급하면서 엄청난 이슈가 됐어요.

'천송이 코트' 사태를 보도하는 당시의 언론 기사(출처:네이버 뉴스 검색)
'천송이 코트' 사태를 보도하는 당시의 언론 기사(출처:네이버 뉴스 검색)

 

그러면서 간편 결제와 금융 산업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당시 언론을 통해 꾸준히 이 문제를 제기해온 저희가 주목받았죠. 언론도 '핀테크'란 용어를 대중화시키며 규제 개혁이 필요함을 역설했고요. 사실 저희는 '핀테크'란 용어를 몰랐어요. 핀테크 서비스로 토스가 언급되며 알았죠.(웃음) 이렇게 언론과 정부가 규제 개혁 필요성에 공감하며 분위기가 바뀌었고 서비스 중지 1년 만에 금융당국이 '토스가 현행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라는 유권 해석을 내리면서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었어요."

 

Q.서비스를 재개하고 후 셧다운 이전의 성장성을 바로 이어갔나요. 

"2015년 2월 서비스를 다시 오픈하고 한동안은 낮은 성장에 고전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셧다운 전에는 모든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했지만 셧다운이 풀린 이후에는 개별 은행 각각과 서비스 제휴를 해야 했거든요. 당시 시중은행 1곳과 지방은행 2곳만 제휴가 된 상태에서 서비스를 재개해 사용성이 크게 떨어졌어요. 서비스는 편하지만 쓸 수 있는 은행이 거의 없었죠. 2015년 한해 동안 토스 누적 다운로드가 40만 건 정도였어요. 그해 연말 팀원들과 송년회를 하는데 기대했던 성과에 미치지 못해 아쉬움이 컸어요. '내년에는 더 열심히 하자' 이런 말을 많이 했었어요.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제휴 은행을 많이 늘리는 거였어요. 개별 은행과 제휴를 맺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뻗치기라고 하죠, 은행 본점에 찾아가 무작정 실무 책임자를 기다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렇게 제휴 은행이 하나씩 늘고 전체 은행 중 토스와 제휴된 은행이 60%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유효한 마케팅 기법을 찾았고 그때부터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어요. 이때가 2016년 1월인데 한 달 만에 그동안의 누적 다운로드 수를 뛰어넘는 60만 다운로드가 나왔죠. 침울한 분위기에서 송년회를 하면서 서로를 격려한지 한 달 만에 극적인 반전을 이룬 거죠. 그 이후로는 쭉 높은 성장을 이어오면서 지금의 토스가 됐어요.

 

Q.치과 전공의란 보장된 길을 두고 많은 실패를 하면서도 창업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창업 전에 '나'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어요. 대학 입학 후 나름 다양한 위치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어떨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 깨달았어요. 인류의 삶의 질 개선에 헌신하는 게 제가 살고 싶은 삶이란 걸 명확히 알고 창업을 했기 때문에 많은 여러 번 실패해도 창업이란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또 다른 이유는 저는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어차피 저는 될 때까지 도전을 할 거라 문제는 성공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성공하느냐 였어요. 그러니 실패할 수가 없는 거죠.(웃음)

개인적으로 KFC 창업자 커넬 할랜드 샌더스를 좋아하는데 이분이 KFC를 창업한 나이가 68살이에요. 토스를 시작하기 전 가장 힘들었을 때 제 나이가 33살이었어요. 샌더스에 비하면 35살이나 어렸으니 35년을 더 실패해도 된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당장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크게 좌절하지도 않았어요.

치과 전공의 시절의 이승건 대표
치과 전공의 시절의 이승건 대표

 


Q.대표님이 힘든 순간을 겪으며 얻은 인사이트는 무엇인가요. 

"저는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끈기인 거 같아요. 핵심은 이 끈기를 유지하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마음으로 창업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 사람은 사업이 잘 안되면 1년 이상 버티지 못하더라고요. 당장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과 돈을 벌고 싶다는 신념이 부딪치면서 결국 신념이 꺾이기 때문이죠.

그동안 창업을 하면서 느낀 건 위대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데는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거예요. 이 기간을 버티기 위해선 단지 돈 때문이 아니라 자기 성찰을 통해 발견한 명확한 이유가 필요해요. 그래서 저는 창업하기 전에 자기에 대해 먼저 이해하고 하고 싶은 일을 분명하게 정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바리퍼블리카 단체 사진
비바리퍼블리카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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